대광교회 청년2부 지성율 목사님

“모두가 가족같이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공동체를 꿈꾸고 있어요.”

북한강 어딘가의 카페에서의 목사님.

북한강 어딘가의 카페에서의 목사님.

안녕하세요 목사님! 다른 지체들과는 달리 목사님은 목사님 자기 자신과 교회공동체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에 대해서 질문을 드려볼 예정입니다. 우선 목사님의 한 주를 돌아보셨을 때 회개해야 할 점이 있다면 한 가지 나눠주시고 그 후 어떤 식으로 바뀌게 되었는지 말씀해주세요.

이번 한 주를 돌아봤을 때, 회개보다 감사해야 할 부분이 더욱 크게 느껴졌습니다. 이번 하봉수가 잘 마무리 됨에 감사하고 그 외에도 하나님께 감사한 일들이 많구요. 새벽기도를 드릴 때에도 감사함이 가득합니다. 한편, 요즘 자녀들을 제 마음대로 주장하고 싶어하는 모습 때문에 회개하게 됩니다. 주님이 자녀들의 주인임을 인정하는 훈련을 계속 하고 있는 것 같아요.

회개할 부분보다 감사한 일들이 많으시다니 요즘 감사하지 않는 제 자신에 대하여 생각을 다시금 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질문을 이어서 드릴게요. 설교 말씀을 듣다보면 사랑에 대해 강조하는 부분이 많음을 느낍니다. 거기서 언급하는 특히 좁은 의미의 사랑보다는 훨씬 더 넓은 범위의 사랑임을 느끼는데 특히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에서 많이 느낍니다. 목사님은 원수를 마음을 다해 사랑하신 적이 있나요? 원수를 사랑한 적이 있고 그 사람에 대한 변화를 이끌어 냈다면 그 일화를 나눠주세요. 없다면 원수를 사랑하지 못하는 목회자 자기 자신에 대해서 사랑에 대해 왈가왈부할 자격이 어디에 있는지 말씀해주세요.

답변을 드리기에 앞서 너무 사적인 영역에 관한 질문인지라 자세히 답변하기 곤란한 점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원수를 사랑했던 적이 있고 변화를 만들어낸 적이 있습니다. 일례로 저는 아버지와의 관계가 좋지 못한 편이었는데 결국 화해를 하고 아버지의 변화를 이끌어 냈었습니다.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더라도 어렸을 때 저를 괴롭혔던 이를 용서했던 적도 있습니다. 원수를 사랑했던 부분은 아니지만 올해는 교회에 잘 나오지 못하는 지체들을 좀 더 사랑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목사님 개인으로써 타인을 사랑하려는 의지, 그리고 공동체 구성원을 챙기려는 마음가짐이 많이 느껴지네요! 사랑도 중요하지만 교회에서는 전도도 굉장히 중요시 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목사님은 전도의 최선봉에 있는 이로써 이름 모를 한 사람에게 주님을 알리기 위해 목숨도 내놓을 준비가 되셨나요? 준비가 되셨다면 그렇게 마음을 굳히게 된 과정을 자세히 나눠주세요.

솔직히 말하자면 아직 이름 모를 한 사람을 위해 죽음을 택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해외 단기선교나 구호활동에 참여하는 것으로 조금씩 이름 모를 한 사람을 위한 희생과 섬김을 배우며 실천하고 있습니다.

제가 질문을 드렸지만 결국 목사님도 저희들과 크게 다를 것이 없음을 느꼈던 답변이네요. 누구나 목숨을 내놓는 일은 쉽게 하기 어려운 법이니까요. 십분 이해합니다. 이번에는 교회와 공동체 관련한 질문들을 드려볼게요. 교회 내에는 다양한 훈련과정이 있습니다. 목사님은 현재 사역훈련을 진행중인데 훈련 과정에 나와있는 주님의 말씀에 대한 교훈들 그리고 내주는 과제들에 대해 훈련과정을 인도하는 목사님들도 훈련생들과 함께 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물론입니다. 저는 준비해야 하는 입장에서 훈련생들보다 더욱 많이 그리고 제대로 준비를 해야만 해요. 그래야 과정 진행이 가능하니까요. 해당 과정의 내용을 훈련생들이 더 잘 이해하고 배울 수 있도록 매번 새로운 방법을 찾게 됩니다. 또, 말씀의 교훈을 적용하는 일 역시 간과할 수 없습니다. 저도 실천하지 않는 내용을 가르친다면 아마 훈련생들은 금방 이탈하게 될 거에요. 이 부분이 감사하면서도 가장 어려운 점이라고 생각해요.

목사님의 고생이 느껴지는 답변이네요. 주님의 자녀로 길러내야 한다는 부담감도 작지 않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공동체에 관한 질문을 더 드릴게요. 교회는 죄인들의 공동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 죄인들의 공동체라는 프레임 뒤에 숨어서 믿지 않는 신도들과 차이를 보이지 않는 교인들과 노력하더라도 결국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는 교인들도 결국 구원을 받게 될까요? 목사님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타인의 구원 문제에 있어서 전제되어야 할 것은, 인간의 안목으로 다른 사람의 구원을 판단할 수 없으며, 동시에 하나님 앞에 서기 전까지 어떤 한 시점의 모습만 보고도 알 수 없다는 점입니다.  또, 구원은 행위로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믿음으로 받는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 자신에게는 겸손하게 구원받는 믿음과 더불어 구원받은 삶에 합당한 모습이 나타나도록 해야 합니다. 구원받았으니 막 살아도 된다는 태도는 야고보 사도의 말처럼 ‘죽은 믿음’ 일지도 모릅니다. 한편, 타인의 구원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겸손하게 정죄하기 보다는 그 사람도 장차 하나님의 백성다운 사람이 되길 바라며 함께 구원을 이루어 가야 하겠습니다.